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학자 중 한 명인 스티븐 커비는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자신의 삶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한 습관 중 하나로 ‘Begin with the end in mind(끝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라)’고 제시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끝을 염두에 둔 목표를 확립하는 과정이 필수라는 의미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신약이 최종적으로 가져야만 하는 요건을 초기 단계부터 그려놓는 것, 즉 ‘TPP(Target Product Profile)’를 수립하는 것은 신약 개발 성공을 향한 여정의 필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TPP를 수립하라
TPP란 말 그대로 목표 제품 특성, 즉 개발 중인 의약품이 개발의 최종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즉 최종 허가를 받는 시점에 어떤 특성을 가질 것인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상세히 정의해 놓은 문서다.
의약품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약물의 시판 허가를 받고 많은 환자가 그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시판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개발 단계를 거쳐 이 약물을 사용할 목표 환자군에서 약물의 안전성(safety)과 유효성(efficacy)이 입증돼야 한다.
따라서 TPP 개발은 대상 환자군을 정의하고 목표 적응증을 수립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변수(endpoint)들의 목표 수치를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효과적인 의약품의 투여 경로, 용법 용량 및 투여 기간 등 약물의 실제 사용 시점을 염두에 둔 제품의 특성들을 정한다. 제제학적 특성과의 약품의 품질관리 요소도 포함한다.
하지만 허가기관에서 원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춰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 승인을 받으면 성공했다 할 수 있을까. 승인만을 목표로 개발하다 보면 임상시험에 십여 년의 시간과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투자하고도 그 약이 거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의약품도 결국 ‘제품’이므로 소비자인 의사 또는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이 되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미충족 의료 수요를 충족시킴은 물론이고 경쟁제품 대비 뚜렷한 차별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리하자면, TPP란 개발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 입증 전략, 허가 시점에서의 경쟁제품 대비 차별화 요소, 상업적 가치 등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전략적 도구라 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Begin with the end in mind’라는 말처럼 TPP는 본격적으로 데이터를 도출하기 훨씬 전, 개발 초기 개발 의약품의 개념 증명(proof-of-concept)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수립할 수 있고 제조 품질 관리, 비임상, 중개연구, 독성, 약리학, 임상개발, 허가, 마케팅 등 신약 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팀이 관여해 작성한다.
목표를 세워놓고 신약 개발의 각 단계에서 TPP를 충족할 수 있는 비임상 연구, 중개연구 및 임상시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도출하면 효율성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실패 확률도 줄어든다.
과학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규제환경과 경쟁상황이 늘 급변하는 만큼 TPP는 개발 중간중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업데이트되는 '살아 있는 문서이다'
임상시험을 포함한 모든 신약 개발 과정은 각 단계에서 도출된 결과를 기반으로 개발 의약 품이 TPP를 충족하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개발 초기 단계에서 경쟁력 있는 TPP의 수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TPP 개발의 핵심 : 미충족 수요와 경쟁제품 대비 차별화 요소를 이해하는 것
경쟁력 있는 TPP는 어떻게 개발되는 걸까.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은 개발 적응증의 선정이다. 목표 적응증(target indication)은 의약품의 개발 의도, 물리화학적·생물학적 특성 및 작용 기전 등을 바탕으로 선정한다.
또한 목표 적응증의 현재, 그리고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emerging) 치료 패러다임을 분석하고 목표 환자군(target population)을 구체화해야 한다. 미충족 의료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고, 또 개발 의약품이 그 미충족 수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충분한 목표 환자군을 찾는 것이다.
목표 환자군을 세분화했다면 해당 환자군에서 현재 표준치료법과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경쟁상황 분석을 통해 개발 의약품이 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화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개발의약품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특히,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미충족 수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신약의 시판 허가가 예전보다 단축되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개발된다 해도 비임상 단계부터 약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전 세계 수많은 제약사가 다양한 약제를 개발하고 있으므로 5년이란 시간은 질병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면역항암제를 예로 들면, 2011년 미국 식품의 약국(FDA)이 처음으로 면역관문억제제 여보이를 암 치료제로 승인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옵디보, 키트루다, 티쎈트릭 등 여러 면역항암제가 다양한 암종의 치료제로서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다.
면역항암제 등장 이전엔 대부분의 암 환자가 세포독성 항암제만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지금은 많은 암 환자가 면역항암제를 투여받는다. 예전에는 화학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미충족 수요였다면 면역항암제의 등장으로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암, 면역항암제로 조절이 되다가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조절되지 않는 암 등 새로운 미충족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같은 원리로, 지금 개발되고 있는 경쟁제품이 몇 년 안에 시판 허가되어 표준치료요법이 바뀌게 된다면 현재의 미충족 수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TPP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허가 시점에 기초한 시장상황 분석이 필요하다.
좀 더 간단한 예로, 단백질 신약 A(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를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제2형 당뇨병의 1차 표준치료제로는 먹는 약인 메트포르민이 사용되고 있는데, 메트포르민은 50년 이상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돼 안전성과 임상적 효능이 입증된 약으로 미충족 수요가 크지 않다.
게다가 경구제제인 메트포르민에 비해 주사제인 단백질 신약 A는 환자 편의성 측면에서 크게 불리하므로, 단백질 신약 A는 1차 치료제보다는 2차 이상 치료제로 개발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목표 환자군을 ‘제2형 당뇨병의 2차 이상 치료제’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단백질 신약 A가 특정 바이오마커를 가진 환자에서 더 효능이 좋을 것으로 예측된다면 ‘제2형 당뇨병의 특정 바이오마커를 가진 환자에서 2차 이상 치료제’로 더 세분화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선택된 환자군에서 단백질 신약 A가 비임상 연구 및 개념증명 연구 결과로서 충분히 효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이후에는 경쟁제품 대비 차별화 포인트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2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DPP-4 억제제, GLP-1 수용체 작용제 등은 물론이고 현재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기전의 약물들과 비교했을 때 안전성, 효능, 투여 경로, 환자 편의성, 가격경쟁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단백질 신약 A가 어떤 차별화 요소를 가질 수 있을지 예측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들은 시장에 해당 계열의 약물로 처음 출시되어 새로운 시장을 독점하는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보다는 앞서 시판된 의약품들과 비교하여 특장점을 가지는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약물들이 대부분이므로 특히 차별화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다.
TPP에 정해진 형식은 없지만, FDA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적응증별 TPP 작성을 적극 장려하며 작성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Guidance for Industry and Review Staff, Target Product Profile — A Strategic Development Process Tool, FDA Draft Guidance 2007).
일반적으로는 예시에 제시된 바와 같이 최종 허가 사항에 기재될 주요 항목들에 대해 개발 의약품이 가져야 할 프로파일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게 되는데, 이때 최소한의 프로파일(minimum profile), 기본 프로파일(base profile), 최적 프로파일 (optimal profile) 등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가 정해 기술한다.
예를 들면, 최소한의 프로파일이란 규제기관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일 뿐만 아니라 경쟁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미래의 표준치료요법 대비 동등 이상의 효과(비열등성, non-inferiority)를 가짐을 의미한다. 최소한 이 정도의 프로파일은 갖춰야 개발이 의미가 있다는 거다.
반대로 최적 프로파일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결과가 최적인 경우를 상정하며 다소 이상적인 프로파일을 제시한다. 기본 프로파일은 이들의 중간 어디쯤 위치하는데, 대개는 여러 비임상·임상 결과를 근거해보았을 때 가장 있음직한 프로파일을 의미한다.
다시 한번 단백질 신약 A로 돌아가, 단백질 신약 A의 임상 결과가 최소한의 프로파일을 겨우 충족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개발 의약품의 개발을 지속할 것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래의 표준치료요법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물질 개발에 과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지 물어야만 한다.
어느 시점에 개발 의약품이 도저히 TPP라는 도착지에 이를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신속히 개발을 중단해야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막고 인적·물적 자원을 다른 물질의 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임상개발계획(CDP·Clinical Development Plan)이란, TPP를 기준으로 개발 단계별 목표(objective), 임상시험의 순서와 규모 등을 기획하는 문서로 전체 임상개발 전략을 총망라한 문서다.
TPP가 최종 목적지라면, CDP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TPP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구현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임상을 수행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는 것, 즉 지름길을 찾는 것이다. 이처럼 CDP는 전략적 측면과 임상시험 수행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우른다.
목적지가 변하면 경로가 변하듯이, TPP와 CDP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TPP와 마찬 가지로 CDP도 임상단계에 따라 진화하는 ‘살아 있는 문서’다.
경쟁력 있는 TPP와 이에 따른 CDP의 수립은 효과적인 임상개발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개발 과정 전체를 조망해 체계적으로 많은 임상적 근거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백질 신약 A가 경쟁력 있는 TPP를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본 프로파일을 충족해야 하고 임상 단계에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도출해야 한다. CDP 수립 시에는 이러한 데이터를 어느 시점에 어떠한 방식으로 얻을 수 있을지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한다.
위와 같이 수립된 CDP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개발 근거, 상업적·과학적 근거, 임상전략, 임상시험 요약(환자군· 환자수·목적·대조군·평가변수 등), 개별 임상시험 타임라인, 임상약 공급 계획, 개발비 용, 위험 평가 및 위험 방지 대책, 허가전략, 규제기관과의 미팅 및 허가전략 등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개발 의약품의 최종 목적지인 TPP와 그 목적지에 다다르는 지도인 CDP를 그려보았다. 신약과 임상 개발 과정은 나아갈 방향을 조금씩 수정하고 여러 번 지도를 다시 그려서 마침내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이다.
새해에도 부디 우리 모두가 방향을 잘 찾아갔으면, 그리고 부족하지만 이 연재가 신약 개발의 여정에 서 계신 분들께 아주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기를 소망해본다.
다음 연재에서는 임상시험 설계 방법론과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학자 중 한 명인 스티븐 커비는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자신의 삶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한 습관 중 하나로 ‘Begin with the end in mind(끝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라)’고 제시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끝을 염두에 둔 목표를 확립하는 과정이 필수라는 의미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신약이 최종적으로 가져야만 하는 요건을 초기 단계부터 그려놓는 것, 즉 ‘TPP(Target Product Profile)’를 수립하는 것은 신약 개발 성공을 향한 여정의 필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TPP를 수립하라
TPP란 말 그대로 목표 제품 특성, 즉 개발 중인 의약품이 개발의 최종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즉 최종 허가를 받는 시점에 어떤 특성을 가질 것인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상세히 정의해 놓은 문서다.
의약품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약물의 시판 허가를 받고 많은 환자가 그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시판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개발 단계를 거쳐 이 약물을 사용할 목표 환자군에서 약물의 안전성(safety)과 유효성(efficacy)이 입증돼야 한다.
따라서 TPP 개발은 대상 환자군을 정의하고 목표 적응증을 수립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변수(endpoint)들의 목표 수치를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효과적인 의약품의 투여 경로, 용법 용량 및 투여 기간 등 약물의 실제 사용 시점을 염두에 둔 제품의 특성들을 정한다. 제제학적 특성과의 약품의 품질관리 요소도 포함한다.
하지만 허가기관에서 원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춰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 승인을 받으면 성공했다 할 수 있을까. 승인만을 목표로 개발하다 보면 임상시험에 십여 년의 시간과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투자하고도 그 약이 거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의약품도 결국 ‘제품’이므로 소비자인 의사 또는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이 되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미충족 의료 수요를 충족시킴은 물론이고 경쟁제품 대비 뚜렷한 차별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리하자면, TPP란 개발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 입증 전략, 허가 시점에서의 경쟁제품 대비 차별화 요소, 상업적 가치 등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전략적 도구라 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Begin with the end in mind’라는 말처럼 TPP는 본격적으로 데이터를 도출하기 훨씬 전, 개발 초기 개발 의약품의 개념 증명(proof-of-concept)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수립할 수 있고 제조 품질 관리, 비임상, 중개연구, 독성, 약리학, 임상개발, 허가, 마케팅 등 신약 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팀이 관여해 작성한다.
목표를 세워놓고 신약 개발의 각 단계에서 TPP를 충족할 수 있는 비임상 연구, 중개연구 및 임상시험을 디자인하고 결과를 도출하면 효율성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실패 확률도 줄어든다.
과학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규제환경과 경쟁상황이 늘 급변하는 만큼 TPP는 개발 중간중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업데이트되는 '살아 있는 문서이다'
임상시험을 포함한 모든 신약 개발 과정은 각 단계에서 도출된 결과를 기반으로 개발 의약 품이 TPP를 충족하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개발 초기 단계에서 경쟁력 있는 TPP의 수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TPP 개발의 핵심 : 미충족 수요와 경쟁제품 대비 차별화 요소를 이해하는 것
경쟁력 있는 TPP는 어떻게 개발되는 걸까.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은 개발 적응증의 선정이다. 목표 적응증(target indication)은 의약품의 개발 의도, 물리화학적·생물학적 특성 및 작용 기전 등을 바탕으로 선정한다.
또한 목표 적응증의 현재, 그리고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emerging) 치료 패러다임을 분석하고 목표 환자군(target population)을 구체화해야 한다. 미충족 의료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고, 또 개발 의약품이 그 미충족 수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충분한 목표 환자군을 찾는 것이다.
목표 환자군을 세분화했다면 해당 환자군에서 현재 표준치료법과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경쟁상황 분석을 통해 개발 의약품이 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별화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개발의약품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특히,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미충족 수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신약의 시판 허가가 예전보다 단축되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개발된다 해도 비임상 단계부터 약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전 세계 수많은 제약사가 다양한 약제를 개발하고 있으므로 5년이란 시간은 질병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면역항암제를 예로 들면, 2011년 미국 식품의 약국(FDA)이 처음으로 면역관문억제제 여보이를 암 치료제로 승인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옵디보, 키트루다, 티쎈트릭 등 여러 면역항암제가 다양한 암종의 치료제로서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다.
면역항암제 등장 이전엔 대부분의 암 환자가 세포독성 항암제만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지금은 많은 암 환자가 면역항암제를 투여받는다. 예전에는 화학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미충족 수요였다면 면역항암제의 등장으로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암, 면역항암제로 조절이 되다가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조절되지 않는 암 등 새로운 미충족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같은 원리로, 지금 개발되고 있는 경쟁제품이 몇 년 안에 시판 허가되어 표준치료요법이 바뀌게 된다면 현재의 미충족 수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TPP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허가 시점에 기초한 시장상황 분석이 필요하다.
좀 더 간단한 예로, 단백질 신약 A(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를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제2형 당뇨병의 1차 표준치료제로는 먹는 약인 메트포르민이 사용되고 있는데, 메트포르민은 50년 이상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돼 안전성과 임상적 효능이 입증된 약으로 미충족 수요가 크지 않다.
게다가 경구제제인 메트포르민에 비해 주사제인 단백질 신약 A는 환자 편의성 측면에서 크게 불리하므로, 단백질 신약 A는 1차 치료제보다는 2차 이상 치료제로 개발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목표 환자군을 ‘제2형 당뇨병의 2차 이상 치료제’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단백질 신약 A가 특정 바이오마커를 가진 환자에서 더 효능이 좋을 것으로 예측된다면 ‘제2형 당뇨병의 특정 바이오마커를 가진 환자에서 2차 이상 치료제’로 더 세분화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선택된 환자군에서 단백질 신약 A가 비임상 연구 및 개념증명 연구 결과로서 충분히 효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이후에는 경쟁제품 대비 차별화 포인트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2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DPP-4 억제제, GLP-1 수용체 작용제 등은 물론이고 현재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기전의 약물들과 비교했을 때 안전성, 효능, 투여 경로, 환자 편의성, 가격경쟁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단백질 신약 A가 어떤 차별화 요소를 가질 수 있을지 예측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들은 시장에 해당 계열의 약물로 처음 출시되어 새로운 시장을 독점하는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보다는 앞서 시판된 의약품들과 비교하여 특장점을 가지는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약물들이 대부분이므로 특히 차별화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다.
TPP에 정해진 형식은 없지만, FDA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적응증별 TPP 작성을 적극 장려하며 작성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Guidance for Industry and Review Staff, Target Product Profile — A Strategic Development Process Tool, FDA Draft Guidance 2007).
일반적으로는 예시에 제시된 바와 같이 최종 허가 사항에 기재될 주요 항목들에 대해 개발 의약품이 가져야 할 프로파일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게 되는데, 이때 최소한의 프로파일(minimum profile), 기본 프로파일(base profile), 최적 프로파일 (optimal profile) 등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가 정해 기술한다.
예를 들면, 최소한의 프로파일이란 규제기관으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일 뿐만 아니라 경쟁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미래의 표준치료요법 대비 동등 이상의 효과(비열등성, non-inferiority)를 가짐을 의미한다. 최소한 이 정도의 프로파일은 갖춰야 개발이 의미가 있다는 거다.
반대로 최적 프로파일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결과가 최적인 경우를 상정하며 다소 이상적인 프로파일을 제시한다. 기본 프로파일은 이들의 중간 어디쯤 위치하는데, 대개는 여러 비임상·임상 결과를 근거해보았을 때 가장 있음직한 프로파일을 의미한다.
다시 한번 단백질 신약 A로 돌아가, 단백질 신약 A의 임상 결과가 최소한의 프로파일을 겨우 충족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개발 의약품의 개발을 지속할 것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래의 표준치료요법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가지는 물질 개발에 과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지 물어야만 한다.
어느 시점에 개발 의약품이 도저히 TPP라는 도착지에 이를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신속히 개발을 중단해야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막고 인적·물적 자원을 다른 물질의 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임상개발계획(CDP·Clinical Development Plan)이란, TPP를 기준으로 개발 단계별 목표(objective), 임상시험의 순서와 규모 등을 기획하는 문서로 전체 임상개발 전략을 총망라한 문서다.
TPP가 최종 목적지라면, CDP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TPP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구현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임상을 수행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는 것, 즉 지름길을 찾는 것이다. 이처럼 CDP는 전략적 측면과 임상시험 수행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우른다.
목적지가 변하면 경로가 변하듯이, TPP와 CDP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TPP와 마찬 가지로 CDP도 임상단계에 따라 진화하는 ‘살아 있는 문서’다.
경쟁력 있는 TPP와 이에 따른 CDP의 수립은 효과적인 임상개발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개발 과정 전체를 조망해 체계적으로 많은 임상적 근거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백질 신약 A가 경쟁력 있는 TPP를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본 프로파일을 충족해야 하고 임상 단계에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도출해야 한다. CDP 수립 시에는 이러한 데이터를 어느 시점에 어떠한 방식으로 얻을 수 있을지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한다.
위와 같이 수립된 CDP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개발 근거, 상업적·과학적 근거, 임상전략, 임상시험 요약(환자군· 환자수·목적·대조군·평가변수 등), 개별 임상시험 타임라인, 임상약 공급 계획, 개발비 용, 위험 평가 및 위험 방지 대책, 허가전략, 규제기관과의 미팅 및 허가전략 등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개발 의약품의 최종 목적지인 TPP와 그 목적지에 다다르는 지도인 CDP를 그려보았다. 신약과 임상 개발 과정은 나아갈 방향을 조금씩 수정하고 여러 번 지도를 다시 그려서 마침내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이다.
새해에도 부디 우리 모두가 방향을 잘 찾아갔으면, 그리고 부족하지만 이 연재가 신약 개발의 여정에 서 계신 분들께 아주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기를 소망해본다.
다음 연재에서는 임상시험 설계 방법론과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